계약담당공무원의 고지의무 범위
사실관계
A사령부 소속 재무관은 273,830,000원이 관사신축공사의 예산으로 배정되자, 건축사 사무소와 공사에 필요한 설계업무 위탁계약을 체결함. 건축사사무소는 공사의 원가를 500,000,000원으로 계산하여 설계도서와 설계내역을 제출하였는데, B공무원은 일위대가표의 노무 수량을 대폭 축소하거나 삭감하여 공사의 원가를 226,965,002원으로 하는 원가계산서 등을 작성하가 요청한 사항을 대부분 반영하여 공사의 원가를 230,377,000원으로 하는 설계도 서와 여 건축사사무소에 주면서 설계도서와 설계내역서의 수정을 요청함.
건축사사무소는 B설계내역서를 A사령부에 제출함. A사령부 재무관은 공사에 관하여 제한경쟁입찰 방식으로 기초예비가격 223,465,690원, 예산액 230,377,000원 등을 내용으로 입찰공고를 하였고, 甲회사는 입찰에 참가하여 예정가격 222,572,477원의 87.7781%에 해당하는 195,370,000원에 낙찰받아 공사를 시작함. 甲회사는 공사를 실시한 후 A사령부 담당공무원에게 ‘외부업체에 의뢰하여 입찰공고된 설계금액의 타당성을 조사한 결과 공사에 필요한 노무비가 지나치게 낮게 산정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하면서 설계변경에 따른 계약금액의 증액조정을 요청하였으나, 담당공무원은 설계변경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甲회사의 요청을 거절함.
甲회사는 관사를 완공한 후 국가에게 인도하였고, 그 결과 도급계약에서 정한 계약금액을 상당히 초과하는 비용을 지출하게 됨(특히, 직접노무비와 간접노무비가 도급계약에 산입된 금액은 35,792,444원이었으나, 甲회사가 실제 지출한 금액은 96,915,000원). 그러자 甲회사는 국가를 상대로 ‘국가가 신의칙상 고지의무를 위반하여 지나치게 낮은 계약금액으로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였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함.
사안의 쟁점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시설공사계약의 계약담당공무원이 회계예규를 준수하지 아니하고 표준품셈이 정한 기준에서 예측 가능한 합리적 조정의 범위를 벗어난 방식으로 기초예비가격을 산정하였고, 낙찰자가 그러한 사정을 알았더라면 입찰에 참가할지 결정하는 데 중요하게 고려하였을 것임이 경험칙상 명백한 경우, 국가가 입찰참가자들에게 미리 그 사정을 고지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 / 국가가 고지의무를 위반한 채 계약조건을 제시함으로써 통상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고 오인하여 계약을 체결한 낙찰자가 불가피하게 계약금액을 초과하는 공사비를 지출하는 등으로 손해를 입은 경우, 국가가 고지의무 위반과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지 여부
판결의 요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시설공사계약의 예정가격을 원가계산방식에 의하여 산정할 때에 계약담당공무원이 준수하여야 할 구체적인 사항은 대부분 기획재정부 회계예규인 ‘예정가격작성기준’(2010. 10. 22. 2200.04 -160-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회계예규’라고 한다)에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회계예규는 국가가 사인과 사이의 계약관계를 합리적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관계공무원이 지켜야 할 계약사무 처리에 관한 필요사항을 규정한 것으로서 계약담당공무원의 실무 준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계약담당공무원이 예정가격을 정하는 과정에서 회계예규의 규정을 준수하지 않았더라도 그 사유만으로 곧바로 국가가 계약상대방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이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령의 취지로 명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계약당사자인 경우에는 일반 사인 사이의 계약과 달리 계약조건은 경비의 절감 못지않게 계약이행 결과의 건전성과 품질 및 안전의 확보 등 공공 일반의 이익까지 중요한 고려요소가 된다.
회계예규도 그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계약담당공무원이 지켜야 할 가격산정의 기준을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규정하였으므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의 입찰조건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회계예규 등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입찰에 참가하는 당사자로서도 입찰공고에서 따로 공지된 사항이 없는 이상 기초예비가격과 복수예비가격이 회계예규에서 정한 표준품셈 등의 기준에 따라 산정되었을 것으로 신뢰하고, 만약 가격이 회계예규 등의 기준을 현저히 벗어난 방식으로 산정된 것이면 그 내용을 명시적으로 공지하여 입찰참가자가 이를 고려할 수 있도록 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계약담당공무원이 회계예규를 준수하지 아니하고 표준품셈이 정한 기준에서 예측 가능한 합리적 조정의 범위를 벗어난 방식으로 기초예비가격을 산정하였음에도 그 사정을 입찰공고에 전혀 표시하지 아니하였고, 낙찰자가 그러한 사정을 알았더라면 입찰에 참가할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게 고려하였을 것임이 경험칙상 명백한 경우에는, 국가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입찰공고 등을 통하여 입찰참가자들에게 미리 그와 같은 사정을 고지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국가가 그러한 고지의무를 위반한 채로 계약조건을 제시하여 이를 통상의 경우와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오인한 나머지 제시 조건대로 공사계약을 체결한 낙찰자가 불가피하게 계약금액을 초과하는 공사비를 지출하는 등으로 손해를 입었다면, 계약상대방이 그러한 사정을 인식하고 그 위험을 인수하여 계약을 체결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가는 고지의무 위반과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국가는 甲회사에게 그에 따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甲회사의 손해는 실제 지출한 직접 간접 노무비 96,915,000원과 계약금액 중 직접 간접 노무비 35,792,444원의 차액 상당인 61,122,556원, 단 甲회사의 과실을 참작하여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70%로 제한한다). ① C공무원은 예산 사정을 이유로 국가가 당사자인 계약의 일반적인 거래관행이나 사회통념에 비추어 합리적 조정의 범위를 넘었다고 할 만큼 과도하게 노무 수량을 축소하거나 삭감하여 건축사사무소로 하여금 설계금액을 감액하도록 함으로써 회계예규가 정한 준칙 및 표준품셈에 의한 가격 기준에서 현저히 벗어난 방식으로 원가산정을 하고 이에 근거하여 기초예비가격을 결정한다. ② 甲회사가 그와 같은 사정을 미리 알았더라면 공사도급계약과 같은 조건으로 입찰에 참가하지는 아니하였을 것임이 경험칙상 명백하다. ③ 국가가 위 사정을 고지하지 아니한 채 甲회사와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한 것은 신의칙상의 고지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해당판결이 가지는 실무적 의미
본건은 특정 사업에 배정된 예산 부족을 이유로 과도하게 기초예비가격을 축소하고 설계변경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을 거부한 국가에게 신의칙상 고지의무 및 그러한 고지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사안으로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발주기관의 재량을 신의성실 원칙(계약 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은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할 때 상대방의 정당한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이라는 일반 법리를 이용하여 제한한 판결임. 실무에서는 부족한 예산 등을 이유로 본건과 같은 공사도급계약을 포함하여 물품구매계약 등에서 단가를 지나치게 낮게 구성하여 계약을 체결하는 사례가 있음. 이러한 경우에는 본건 판시 내용을 참고하여 사전에 사업규모 등을 조정하여 적정 공사비를 산정하거나, 그러한 사유가 계약상대자에게 입찰 참가 내지 계약 체결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에는 사전에 그 사유를 고지하여야만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손해배상책임의 위험성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 유의하여야 함.